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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설속의 절도범하면 빵 한 조각 훔친죄로 19년 동안 옥살이를 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Jean Valjean)'을 떠올리기도 하는데요. 1970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외국에서 자랑스러운(?) 절도(?)를 하여 화제가 되었던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정치인 박영록(1922년 3월 25일 강원도 고성군 출생)은 제11대 강원도지사(1960년~1961년. 최초의 민선 강원도지사)에 선출, 제6대·7대·9대·10대 국회의원의로 선출되면서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는데요. 



박영록은 신민당 소속의 제7대 국회의원 시절인 1970년 8월 15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였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의 올림픽 승리자 기념탑에는 손기정 선수의 국적이 JAPAN(일본)으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남승룡 선수(맨왼쪽)와 손기정 선수(가운데)>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사람으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붙어 있었기에 월계수로 그것을 가려야만 했습니다.


<남승룡 선수(왼쪽)와 손기정 선수(오른쪽)>


대한민국 손기정 선수와 함께 남승룡 선수는 3위를 차지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는데요. 그는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축하를 보냈지만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에게 딱 한가지가 부러웠다고 합니다. 바로 금메달리스트에게만 수여되는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없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은 식민치하의 조국에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지만 가슴의 일장기는 치욕이기도 하였습니다. 박영록 의원은 숙소로 돌아왔지만 손기정 선수의 국적 'JAPAN(일본)'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밤, 박영록 당시 국회의원은 베를린 올림픽 기념관에 몰래 불법으로 침입, 기념비에서 손기정의 국적 'JAPAN'이라는 다섯 글자를 떼어내고 다른 기념비에서 떼어낸 알파벳으로 'KOREA'를 완성 시켰습니다.




'JAPAN'을 'KOREA'로 고친 사실을 알게 된 독일 경찰은 그에 대해 불법 침입 및 공공재산 파손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하였지만 체포 직전 독일을 벗어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가 다시 독일로 송환되어 처벌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귀국 당시 박영록 부부는 "이제 우리는 승리 했다. 한민족이 거둔 세기적 영광, 손선수 만세!"라는 현수막을 손수 만들어 보였고 마중나온 손기정 선수는 박영록 의원을 안으며 "일본인 손기정을 한국인으로 탄생시켜준 나라의 부모"라며 눈물을 흘리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박영록 의원의 역사 교정(?) 작업은 워낙 정교하게 이루어져 한동안 기념관측도 모르고 있었으며 일본인 관광객의 항의에 의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영록은 1960년 정치에 첫 발을 디딘 '민선 강원도 지사'시절부터 청렴한 삶으로 유명하였습니다.



도지사 였지만 관용차를 거부하였고 도시락을 싸들고 직접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이후 군사 정권이 들어선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에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하였습니다.



이후 군사정권의 독재와 폭압에 맞서 항거하였고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영장 없이 강제 연행이 된후 47일 동안 구금을 당하고 강제로 재산도 몰수 당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2007년 7월에는 한 시민단체의 '대한민국 청렴 정치인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상금 1억원의 상금은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2004년부터 서울 강북구 삼선초등학교 뒷문 쪽에 컨테이너 박스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고 있습니다.



슬하에 자식은 아들만 셋을 두었지만 장남은 현역 정치인 시절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막내 역시 사업 실패를 비관하여 자살하면서 현재는 차남만이 원주에 살고 있습니다. 현역 정치인 시절 청렴한 삶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몇년전에는 그의 딱한 사정을 들은 한 독지가가 여러차례 자신의 빈집으로 들어와 달라는 부탁을 하도 간곡히 하여 따라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강남의 70평짜리 집이었지만 도저히 자신의 양심을 어기며 살 수는 없었기에 정중히 거절하였다 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을 치루던 때에 박 후보를 지지하는 원로 정치인으로 기사가 나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랬나요?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이름이 올라간 모양"이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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