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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축구에서는 메시와 호날두, 테니스에서는 나달과 페더러, 권투에서는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등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라이벌 당사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부담감과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괴로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은 결과를 예상하기 힘든 치열한 승부때문에 더욱 열광하기도 합니다.


<희대의 사건 주인공 토냐 하딩(왼쪽)과 낸시 케리건(오른쪽)>


하지만 지나친 승부욕에 눈이 멀어 경기장 밖에서 라이벌을 제거하려는 일이 발생하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1994년 미국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토냐 하딩(Tonya Handing) 선수가 라이벌인 낸시 케리건(Nancy Kerrigan) 선수를 습격한 사건 입니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 흑역사이자 스포츠 스캔들로 남게 된 사건인데요.



토냐 막세네 하딩(Tonya Mexene Harding. 1970년 11월 12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출생)은 3살 때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 12세 때 생애 첫 트리플 러츠에 성공하였으며, 1991년 전미(全美) 피겨 스케이팅 대회 우승에 이어 같은 해 세계 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수상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성장 하였습니다.


<토냐 하딩>


미국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 점프 기술)을 성공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그녀에 앞서 미국에는 일본계 미국인인 크리스티 야마구치(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크게 빛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내 야마구치가 프로 선수로 전향하면서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이 그녀에게 세계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고 있던 그녀에게는 낸시 캐리건(Nancy Kerrigan. 1969년 10월 13일 메사추세츠주 스톤햄 출생)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낸시 케리건>


낸시 캐리건은 1991년 세계 선수권 동메달, 1992년 동계 올림픽 동메달, 1992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차지한 선수로 토냐 하딩이 갖지 못한 올림픽 메달까지 이미 획득한 상태 였습니다. 야마구치에 이어 두 선수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1990년대 미국내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는 다른 어떤 스포츠에 뒤지지 않을만큼 어마어마 했는데요.


전대미문의 사건은 1994년 1월 6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미국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쉽 대회 싱글 프리경기를 이틀 앞둔 낸시 케리건이 아이스 링크에서 연습을 마치고 대기실로 이동하는 도중 정체 불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며 무릎위 허벅지 부분을 다치게 된 것입니다.


<괴한의 습격을 당한 낸시 케리건 방송 장면.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케리건이 준비중이었던 싱글 프리경기는 그 해 열리는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린미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는데요. 이렇듯 중요한 시기에 케리건이 괴한의 습격을 당한 것이었고 습경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며 미국 전역으로 방송이 되면서 그 충격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피겨 스케이팅의 엄청난 인기는 피겨 스타 선수가 곧 미국 자체를 상징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졌기에 미국 국민 사이에서는 혹시 이것이 미국 국가에 대한 테러가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 였습니다.



이렇듯 낸시 캐리건 습격 사건은 미국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왔고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 FBI(연방수사국)까지 수사에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사건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요. 낸시 케리건을 습격한 사람은 바로 낸시 케리건의 경호원(보디가드)이며 그 배후에는 라이벌인 토냐 하딩의 이혼한 전 남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994년 2월 12일부터 시작되는 제 17회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경쟁자인 낸시 케리건의 올림픽 출전을 저지하기 위해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이 폭력을 사주하여 경기장 밖에서 테러를 자행한 것이었습니다.


낸시 케리건의 배후에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이 사주한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들은 이 모든 일을 토냐 하딩이 계획한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토냐 하딩은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평소에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고 낸시 케리건과 치열한 라이벌이었기에 "토냥 하딩이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라는 소문까지 돌면서 그녀에 대한 의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FBI(연방수사국)는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을 집요하게 추궁하였고 2월 1일, 감형받는 조건으로 "토냐 하딩이 사건을 청부하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라는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게 됩니다.




곧바로 미국 빙상 연맹은 토냐 하딩의 징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토냐 하딩은 2월 10일, 오히려 미국 빙상 연맹을 상대로 2천만 달러의 손해 배상 청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아무리 소송의 천국 미국이라지만 이게 무슨...).



토냐 하딩의 손해 배상 소송에 미국 빙상 연맹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올림픽 출전은 그대로 승인하고 징계 절차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 진행하는 것으로 협상을 하였습니다. 결국, 토냐 하딩의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출전은 그대로 확정이 된 것인데요.


그러자 미국내 대중들의 비난이 빗발치며 억울하게 탈락한 낸시 케리건을 동계 올림픽에 참가시키라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케리건의 부상은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았기에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데 문제는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 빙상 연맹은 희대의 라이벌 선수 습격 사건의 피해자인 낸시 케리건을 릴레함메르 경기장에 토냐 하딩과 함께 미국 국가 대표로 세우기로 결정합니다. 미국 빙상 연맹 규정중 "연맹은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를 선발할 수도 있다"는 조항을 들면서 말이죠. 


결국, 국가대표 선발전 2위로 올림픽 참가 예정이었던 슈퍼 루키 미셸 콴은 후보 선수로 밀려나게 됩니다. 미셸 콴은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릴레함메르로 두 선수와 함께 날아갔지만 결국 그녀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낸시 케리건보다 미셸 콴이 더 큰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낸시 케리건 보다 어쩌면 더 큰 피해자일 수도 있는 '미셸 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토냐 하딩과 낸시 케리건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레르 동계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나란히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세기의 대결은 당연히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는데요.


낸시 케리건은 습격 사건의 당사자(?) 앞에서 보란듯이 뛰어난 연기를 펼치며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토냐 하딩은 특별한 실수는 없었지만 8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 싱글 금메달은 우크라이나의 옥사나 바이울(당시 16세)이 차지 하였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미국 빙상 연맹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결국 토냐 하딩은 선수권을 박탈하고 영구 제명하였습니다. 토냐 하딩은 3월 18일, 혐의를 인정하여 집예 유예를 선고 받았습니다. 결국 실형만 살지 않았을 뿐이지 실질적인 범인으로 확정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토냐 하딩은 프로복서와 카레이서등으로 활동하며 재기를 꿈꾸었지만 대중의 싸늘한 시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2008년 자서전에서는 "테러 모의시 자신은 반대했지만 무장한 강도들의 협박을 받고 강간까지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믿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실제 토냐 하딩(왼쪽)과 그녀를 연기한 마고 로비(오른쪽)>


낸시 케리건은 올림픽 은메달 이후 억울한 폭행의 피해자이며 그것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추앙받으며 방송과 각종 광고등을 찍으며 '국민 스타'가 되었습니다. 피겨 스타로서 아이스쇼에 출연하고 피겨 스케이팅 해설자로 지내며 2004년에는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있어서는 안 될 토냐 하딩의 낸시 케리건 습격(폭행) 사건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아이, 토냐(I, Tonya)>라는 제목으로 곧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인공 토냐 하딩역에 마고 로비(Margot Robbie)가 출연하는데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악당 조커의 여자친구인 할리 퀸젤(할리퀸)역할을 맡았던 그녀가 최악의 스포츠 스캔들을 일으킨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는 토냐 하딩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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