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 자녀를 둔 전쟁 고아의 아버지 '러셀 블레이즈델'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s List. 1993년)>로 잘 알려진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박해와 학살 위기에 빠진 약 1200명의 유대인들을 탈출시킨 것으로 유명한데요. 6.25 한국 전쟁 당시에도 쉰들러처럼 약 1,000여명의 전쟁 고아들의 생명을 구한 미군 공군 중령이 있었습니다.

공군 군목(군인 목사) 대령(당시 중령) '러셀 로이드 블레이즈델 (Russel Lioyd Blaisdell. 1910년 9월 4일 출생. 2007년 5월 1일 타계)'가 그 주인공 입니다. 6.25 전쟁 당시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은 버려진 전쟁 고아들을 거두어 고아원을 운영중이었습니다.

1950년 12월 중공군(지금의 중국)이 참전하면서 서울의 모든 군대는 후퇴명령(이른바 1.4 후퇴)을 하달 받았습니다. 서울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더불어 전쟁 고아들의 생명도 위협 받게 되자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은 고아들을 탈출시킬 방법을 고민하였습니다.

<맨 우측이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

마침 고아원 아이들에게 평소 많은 관심이 있었던 미군 공군 파일럿 '딘 헤스(Dean Hess)'가 뜻을 함께 하기로 하면서 공군 수송기(C-47)로 탈출 계획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후 한국군의 전차상륙함(LST ; Landing Ship Tank 선박)을 준비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고아들을 인천으로 이동시킨 후 거기에서 전차상륙함에 태운 뒤 제주도로 탈출 시키는 계획을 진행하였습니다.

러셀 블레이즈델은 고아들과 함께 인천으로 이동하였지만 전차상륙함(LST)은 흥남 철수에 동원되어 인천에 오지 못하면서 계획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난감한 상황속에서 제 5공군 책임자인 '얼 패트릿지' 소장의 허가로 김포공항에서 공군 비행기로 수송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천에서 약 천여명(정확히는 1,069명)의 아이들을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김포공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러셀 중령측 차량은 트럭 한 대가 전부였습니다. 추가 차량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지만 헛수고 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절망속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미군부대에서 아직 철수하지 않은 트럭 14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중령 계급을 이용해 거짓으로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며 일명 '유모차 이송(공수) 작전(The Kiddy Car Airlift)을 지시하였고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김포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기적적으로 차량 동원에 성공, 약속 시간인 아침 8시보다 2시간 가량 늦게 김포 공항에 도착하였지만 다행히도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고 공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1950년 12월 21일, 천여명의 고아들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미군은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에게 '고아들을 구하는게 군목의 의무는 아니다'라며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하려고 하였지만 미국내에서도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지고 그를 칭송하는 여론이 일어나면서 처벌은 하지 않았습니다.

<1956년 제주도 고아원을 방문한 딘 헤스>

당시 조력자였던 '딘 헤스'는 대한민국 공군의 양아버지라 불릴 만큼 대한민국 공군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한국 공군의 F-51D 머스탱 '신념의 조인(信念의 鳥人)' 공군기 파일럿이기도 하였는데요.

<2001년 한국을 방문한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

딘 헤스가 '전송가(Battle Hymn. 1957년)'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고 동명의 영화로까지 제작되면서 이 사실이 더욱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유모차 공수 작전의 주역인 '러셀 블레이즈델' 보다 저자인 딘 헤스가 주목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의 공로가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전란의 아이들'이라는 회고록을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2007년 그가 타계한 후, 2009년에는 러셀 블레이즈델의 장남 '카터 블레이즈델' 목사와 차남인 '주드 블레이즈델' 형제가 함께 한국을 방문, 광주광역시 남구 충현원(사회복지법인)에서 거행된 '러셀 블레이즈델' 미국 공군 대령(군목) 동상 제막식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