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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하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Scrooge) 영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자식 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아들의 치료비를 아끼려다 다리까지 절단하게 많든 구두쇠 엄마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헨리에타 하우랜드 헤티 그린(Henrietta Howland Hetty Green Robinson, 1834년 11월 21일 미국 메사추세츠 출생, 1916년 7월 3일 뉴욕시에서 사망) 입니다. 헤티 그린은 중국 무역과 포경선(고래잡이) 사업으로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부모에서 부모까지 모두 매우 아끼며 엄격하게 재산을 모았기에 어린 헤티도 자연스럽게 이런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6살까지 아버지께 재정서류를 읽어 주었고 13살에는 사업 장부 정리를 맡았습니다.



이후 조부모와 부모님이 차례대로 사망하면서 헤티 그린은 21살의 나이에 약 9만 달러(현재 가치 약 200만 달러, 원화 약 24억원)라는 큰 돈을 상속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750만 달러에서 다른 형제, 자매, 친척들때문에 9만 달러밖에 받지 못했다면서 그들과 평생 인연을 끊고 삽니다.



헤티 그린은 상속금을 남북전쟁이 터지자 채권에 투자하면서 뉴욕 월가에 진출, 재산을 불려나갔습니다. 재산을 늘려나가면서도 그녀는 자신에게 돈이 될 수 있는 건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요.



생전에 약 2백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주기로 한 숙모가 자선단체에 모두 기부하면서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5년간 약 15만 달러의 소송비를 지불하면서 결국 50만 달러를 자기앞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엘리자베스라는 또다른 숙모는 헤티에게 어떠한 유산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요. 숙모가 세상을 떠나자 이번에는 아예 유언장을 조작하여 3백만 달러 유산을 가로채려고 하였지만 조작 사실이 발각되면서 연방법원으로부터 약 10만 달러의 벌금형을 처벌 받았습니다.



물론 천하제일 구두쇠인 헤티 그린은 벌금을 내지 않고 버티려고 하였지만 내지 않으면 벌금이 더욱 올라간다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벌금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티 그린은 당시 자신의 수중에 약 4천만 달러 (현재 가치 약 8억 9천만 달러, 원화 약 9천억원)라는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백만 달러를 가로채기위해 조작극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헤티 그린은 '결혼' 역시 비즈니스로 생각하였는데요. 남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재산을 탐내서기때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30세 초반에 에드워드 그린이란 남성과 결혼하는데요. 그가 성공한 사업가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비즈니스'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재산 관리는 각자하며 남편이 파산할 경우 이혼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한 후 결혼을 하였습니다.




헤티 그린은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하였지만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구두쇠 였습니다. 아들 제임스가 무릎뼈가 다치는 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비가 아까워 무상 치료 병원만 찾으려 하였고 찾지 못하자 집에서 대충 나아지기를 기다렸습니다.


<헤티 그린의 아들 에드워드 하우랜드 로빈슨 네드 그린>


결국 방치된 아들의 무릎은 다리까지 썩어들어가면서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수전노(구두쇠)라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후에 이 사건은 당시 아들의 상태가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여 의사도 치료를 포기하면서 발생하였다는 옹호론도 등장하였습니다.



아들의 다리 절단 사건 외에도 헤티 그린의 전설적인 구두쇠 행각은 다양한데요. 세탁비를 아끼려고 늘 검은색 옷만 입었고 자녀들에게도 검은 옷만 입혔습니다. 그녀의 이런 패션은 '월가의 마녀'라는 별명을 불러옵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50여년동안 집을 사지 않고 싸구려 호텔에 그것도 억지로 숙박비를 깎으면서 투숙 생활을 하였습니다. 음식도 찬 오트밀 죽이나 남은 식빵 조각들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습니다.


부스러진 쿠키를 포장 없이 떨이로 싸게 산 후 빈 상자를 5센트에 다시 팔고 키우는 고양이가 먹을 값싼 우유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유일한 친구인 개에게는 푸줏간에서 얻은 쇠고기뼈로 개밥을 만들어 먹였습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겨울에도 따뜻한 물을 사용하지 않았고 별도의 난방없이 버려진 헌 옷가지들을 모아다가 이불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녀가 자주가는 시장이나 상점 주인들은 터무니없이 가격을 깎는 그녀에게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구두쇠 생활을 하였는데요. 남편과의 이혼에도 이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산시 이혼 조건으로 결혼한 남편은 아내가 돈에 대해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에 너무 질린 나머지 파산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이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헤티 그린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 역시 다양한데요.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차별이 심했던 시대이기에 성공을 위해 지독한 자린고비가 될 수 밖에 없었으며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주거나 기부했다는 사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치료비를 아끼기 위해 결국 절단 사태를 불러왔다거나 숙모의 유언장까지 조작하여 유산을 가로채려하는등 돈을 벌기위해 위법도 서슴치 않았던 점등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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