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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스(Michael Jackson)은 팝의 황제(The King of POP), 영원한 슈퍼스타라 불리우며 팝음악 역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겼는데요. 돈에 눈이 먼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짓을 강요하여 팝의 황제를 몰락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시절 형제들과 함께 한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의 성공을 기반으로 솔로로 독립한 이후에도 팝의 역사를 새로 쓰는 명곡들을 줄줄이 발표하며 세계 최고의 팝스타로 자리잡았는데요.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의 인기는 생각지 못한 일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1992년 5월 마이클 잭슨이 운전중인 차량이 고장이 났고 카센터를 찾게 됩니다. 카센터 사장 '데이브 슈워츠'에게는 아내 '준'과 의붓 아들 '조단 챈들러(Jordan Chandler)'가 있었습니다.


아내 '준'은 전남편 '에반 챈들러(Evan Chandler)', 아들 '조단'과 함께 살다 이혼후 데이브와 재혼한 상태였습니다. 데이브는 아내 '준'과 사이가 좋지 못했고 의붓 아들 조단과도 서먹한 사이였습니다.


<잭슨 파이브(Jackson 5) 시절의 마이클 잭슨(가운데)>


의붓 아들 조던 첸들러는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었습니다. 마이클을 본 순간 데이브는 가족들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데이브는 마이클에게 차량을 무료로 빌려주는 댓가로 의붓 아들 '조단'과 전화 통화를 제안하였고 마이클은 흔쾌히 수락하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마이클 잭슨과 첸들러 가족은 친구가 되면서 함께 여행을 다니고 마이클의 대저택인 '네버랜드'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혼후 아내와 친아들을 떠나보냈던 '에반 챈들러'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80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전직 치과의사였던 에반 첸들러는 평소 각본(대본)쓰기를 좋아했고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에반은 아들 조단의 친아버지라는 명목으로 마이클에게 약 230억짜리 영화 제작에 투자(?)를 요청하였지만 거절 당하고 맙니다.


이때부터 에반은 친아들을 이용하여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갑니다. 13세 친아들 조단에게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허위사실을 억지로 주입시킨 것이었습니다.



사기꾼 에반은 마이클 잭슨에게 친아들이 성추행을 당했으니 소송을 하지 않는 대가로 20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2000만 달러는 에반이 마이클에게 영화 제작 투자를 요청했던 230억과 상당히 비슷한 금액입니다.




마이클 잭슨은 성추행 사실이 없었기에 당연히 에반의 협박을 거절하였습니다. 에반은 자신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자 당황하였지만 곧바로 변호사를 통해 3천만 달러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슈퍼볼 경기도중 트레이드 마크인 '문워크'를 선보이는 마이클 잭슨>


미국내에서도 엄중히 다루어지는 아동 성범죄 사건이기에 경찰역시 본격적인 형사 수사에 들어갑니다. 마이클 잭슨측은 민사 소송과 형사 소송을 함께 대처해야 했는데요. 동시에 소송이 진행될 경우, 민사 재판이 먼저 진행되면 형사 재판의 배심원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발생, 보통 형사 재판이 우선 진행이 되는데요.


마이클 잭슨의 경우에는 민사 재판이 우선 진행이 되어버립니다. 민사소송에서 폭로되는 갖가지 근거없는 루머들을 타블로이드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마이클에 대한 미국내 여론은 점점 악화 되어 갔습니다.


<마이클 잭슨과 조단 챈들러, 그리고 사기꾼 에반 챈들러>


마이클 잭슨측은 상황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형사재판전인 1994년 1월 25일 에반과 합의를 선택 하게 됩니다. 조단과 변호인단에게 약 1천 5백만 달러, 사기꾼 에반에게도 5백만 달러를 지불하였는데요.


이것은 미국내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는데요. 합의를 했다는 것은 마이클이 조단에 대한 성추행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형사 재판에서 마이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그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진 뒤였습니다.


<마이클 잭슨과 조단 챈들러>


하지만 악몽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는데요. 2003년에도 유사한 사기꾼인 아르비조 가족들이 역시 돈을 뜯어내기위해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아동 성추행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악몽당시 민사 소송 선진행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이후에는 형사 소송이 우선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경찰과 FBI까지 수사에 나섰지만 아무런 혐의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2005년 6월 13일, 마이클 잭슨은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들의 근거없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그는 재판에선 이겼지만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기꾼들의 연이은 모함과 함께 언론은 덩달아 마이클의 사생활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 보도하였고 마이클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심한 불면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진통제를 수시로 복용하게 되면서 몸이 망가져 갔고 결국 2009년 6월 25일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친아들 조단을 팔아 거액의 합의금을 챙긴 사기꾼 에반 챈들러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합의금을 탕진하였고 뒤늦게 죄책감을 느꼈는지 같은해 11월 5일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사기꾼 아빠의 강요에 의해 허위증언을 했던 아들 조단은 잭슨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의 블로그에 "16년 전 그 일에 대해 진실을 밝힌다. 그(=마이클 잭슨)는 완벽히 결백했다"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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