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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아동 폭력으로 인해 자식이 폭행 당하거나 상처를 입으면 부모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하는데요. 만약에 자식이 유괴(납치)를 당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아마 더더욱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재벌·부자라 불리우는 미국의 폴 게티 집안에서 벌어진 유괴 사건은 이러한 상식을 뛰어넘으며 희대의 납치 사건으로 불리워지고 있는데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 사연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존 폴 게티 3세 (John Paul Getty Ⅲ. 이하 폴 게티 3세)는 아버지 폴 게티 주니어(게티 2세)와 어머니 게일 해리스 사이에서 1956년 태어나는데요. 아버지 폴 게티 2세의 아버지, 즉 폴 게티 3세의 할아버지 J. 폴 게티(J. Paul Getty, 장 or 진 or 존 폴 게티, 폴 게티 1세. 1892~1976)는 당시 미국 최대 규모인 게티 오일 컴퍼니의 설립자로 석유 재벌·오일왕으로 불리우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사람 이었습니다.
폴 게티 3세는 한마디로 세계 최대 갑부인 금수저 집안의 손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빌 게이츠가 할아버지인거죠.) 하지만 어릴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떨어져 이탈리아에서 살게 됩니다.
세계 최고 갑부 집안에서 태어난 게티 3세는 이른 나이에 술과 담배를 시작하였고 좌익시위에도 여러번 참가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던 1973년 7월 10일 당시 16세였던 존 폴 게티 3세는 로마의 유명한 파르네스 광장에서 은드랑게타(Ndrangheta)라는 마피아 조직에 납치를 당합니다.
마피아 조직은 이틀 후 그의 어머니 게일 해일스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을 살리고 싶다면 현금 1,700만달러(한화 약 180억)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게티 3세의 어머니는 당시 폴 게티 2세와 이혼한 상태이기에 그런 큰 돈이 없다고 하였지만 납치범들은 그의 아버지든 할아버지든 얘기해서 알아서 돈을 구하라며 전화를 끊습니다.
그녀는 즉시 폴 게티 집안에 이 사실을 알렸는데요. 폴 게티 집안 가족들은 게티 3세가 돈을 타내기 위해 장난을 치거나 자작극을 벌이는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존 폴 게티는 한술 더 떠 "내게는 손주가 14명이나 있다. 지금 내가 존 폴 게티 3세에게 몸값을 지불하면 다른 손주들도 유괴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며 몸값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할아버지가 손주가 유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납치범들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범인들은 억만장자의 이러한 거절에 대해 자신들을 놀리는 것으로 생각, 납치한지 4개월이 되었을 무렵, 게티 3세의 머리카락 일부와 오른쪽 귀를 잘라 신문사에 보냅니다.
범인들은 최초 1,700만달러에서 후퇴한 몸값 32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만약 10일 안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게티 3세에게 추가적인 상해를 가하겠다는 협박편지도 함께 보냈습니다. 그제서야 게티 3세의 할아버지는 납치범들의 요구에 응하였고 손주는 12월 15일 풀려나게 됩니다.
이후 납치범중 9명이 체포 되었으나 유죄 판결은 단 2명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 5개월만에 납치범들로부터 풀려난 게티 3세(1956~2011)는 할아버지를 포함한 집안의 무심한 대응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며 마약과 음주에 빠지게 되었고 24세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시력상실과 반신마비가 되어 버립니다. 허울뿐인 재벌가 3세로 폐인 생활을 한 그는 2011년에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 회사인 게티 오일 컴퍼니에서 월 100달러를 받으며 일을 시작, 이후 로마 지사의 운영까지 맡았지만 계속해서 월급만 받고 생활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납치 소식에 게티 2세(아버지)는 게티 1세(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나머지 손자 손녀를 핑계로 거절하였고 아들의 잘린 귀를 받게 된 게티 2세는 다시 게티 1세에게 간절히 부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티 2세는 몸값을 빌려주면 연 4% 이자를 적용하여 갚겠다고 하소연 하였고 그제서야 게티 1세는 손자의 몸값 협상에 직접 나서서 50만 달러를 깎아 270만 달러에 납치범들과 합의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이 정도까지 알게 되면 'J. 폴 게티 1세는 과연 돈을 왜 벌었던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는데요. 손주의 목숨 앞에서도 돈 쓰는걸 아까워 할 정도로 그는 유명한 구두쇠·자린고비·수전노 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대저택을 찾아 온 가족이나 지인들이 장거리 전화를 거는 비용을 아깝다면서 동전을 넣어야 전화를 걸 수 있는 일종의 공중전화(유료전화)를 설치했을 정도라고 하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소포(택배) 포장에 사용된 끈을 보관하였다가 재활용하였으며 평생 자기 속옷은 자기가 직접 손으로 빨아 입었다고 합니다. 평생 5번의 결혼식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자신의 부모를 초대하지 않았고 반대로 자식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막내 아들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고 하니 냉혹함과 비정함에 있어서는 거의 끝판왕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입니다. 또한 자식들을 협박하고 길들이기 위해서 툭하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으며 유서도 21번이나 고쳤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이런 상황인데 자선 활동이라는 말은 그와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보다 못한 록펠러가 사람들이 J. 폴 게티를 직접 찾아가 부자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돌려 말하기도 할 정도 였습니다.
이렇듯 열릴 줄 모르는 그의 지갑도 예술품 앞에서는 닫힐 줄 모를정도로 그는 예술품 수집에 광적으로 집착하였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게티재단에 대부분의 재산을 기부, 1997년 12월 대형 예술 미술관인 게티센터가 개관하게 됩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살아생전 지갑을 열줄 몰랐던 J. 폴 게티는 이 미술관 방문객에게 입장료와 주차료등 일체의 비용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에 자선 행위는 돈을 쏟기 보다 인류 유산인 예술품을 보존하는 데 돈을 쓰는게 훨씬 유익하다고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폴 게티 3세 납치 사건은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 리들리 스콧 감독)'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세계 최고 갑부이면서 구두쇠였던 J. 폴 게티 역으로 케빈 스페이시가 촬영까지 마쳤지만 성추문이 불거지면서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대체된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요. 영화속에서 존 폴 게티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 비추어질지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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