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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스티비 원더, 닉 부이치치, 스티븐 호킹등은 장애를 극복하며 인간 승리의 감동을 준 위인들인데요. 미국에서 태어나 청각, 시각, 언어 장애까지 극복하며 전 세계인이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지만 정작 자국에서는 한때 FBI의 감시까지 받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 6월 27일 ~ 1948년 6월 1일) 입니다. 생후 19개월 때 앓은 뇌척수염으로 인해 볼수도 들을수도 말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앤 설리번(Anne Sullivan) 선생을 만나고 장애를 극복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호렌스 만 농아 학교에서 새러 풀러 선생의 도움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16세에 여대에 진학한 후 5개 국어를 습득, 이후 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헬렌 켈러의 모습입니다.


<헬렌 켈러(8세)와 앤 설리번 선생님>


이후 20세가 지나 본격적으로 사회인이 된 헬렌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29세에 사회당에 가입하며 작가로서의 저술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여성 참정권, 인종차별 반대 운동등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전 세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한다."며 제 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선언하자 그녀는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도자는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라며 쓴소리를 말했습니다.



그녀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는 몇가지 인터뷰 일화가 있는데요.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쓸모(자본주의가 규정하는 인간의 경제적 가치)보다 목숨이(인간 본연의 가치)더 길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헬렌 켈러와 전설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미국이 당신의 이상(理想)에 맞는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볼 때 미국은 완벽한 나라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네요. KKK단(극렬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 단체)이 물고문이라도 할까봐요."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윌슨 퇴임후) 전 대통령 윌슨을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실패작이죠"라며 과감한 발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미국이 전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에 "재향군인회와 너문 많은 문제들을 얻었죠"라며 뼈있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헬렌 켈러>


헬렌 켈러는 1차 세계 대전 관련하여 미국내 사회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행적을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전투적 노동자 단체인 IWW(세계 산업 노동자 동맹)등에도 가입하며 평생을 사회주의 관련 운동에 앞장섰는데요.



하지만 이런 그녀의 행보는 당시 이념 대립이 치열했던 세계 분위기와 반공산주의 열풍(이른바 메카시즘)이 불어닥친 미국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에서 "누군가가 헬렌 켈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 였습니다.



그러자 헬렌 켈러는 "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빈민가도 직접 방문하였다. 볼 순 없었지만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분위기는 직접 체험하였다)" 라며 반박하기도 하였는데요.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때문인지 한동안 그녀는 FBI로부터 감시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헬렌 켈러가 태어나서 20세까지 장애를 극복하며 보여준 인간 승리의 모습은 미국이 원하는 영웅의 모습과 일치하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지만 20세 이후의 행적은 어쩌면 당시 미국(정부)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감추어 졌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헬렌 켈러는 9번의 세계 여행을 통해 5대륙 39개국을 방문하였는데요. 1937년 일제 침략 시절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강의를 마치고 평양으로 가는 기차가 개성에 잠시 정차했을 때에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도 놓치지 않고 강연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6.25 한국전쟁때에도 방한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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