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클래식 음악의 신(神), 불세출의 천재인 모차르트는 5살때부터 이미 작곡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여기 6살때 모차르트 소나타를 생전 처음듣고 악보없이 연주한 것은 물론 그 자리에서 조를 바꿔 다시 연주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1895년 1월 7일 루마니아 출생. 1960년 12월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사망) 입니다. 어릴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그녀는 11살에 콘서바토리(음악전문 교육기관)에 입학, 15살에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의 등장은 많은 화제가 되며 대중의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18세에 갑자기 '세포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이 찾아 오고 맙니다. 뼈와 근육, 세포와 세포가 붙는 불치병에 걸린 그녀는 4년 동안 온몸에 깁스를 하고 보내게 되었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그녀는 아름아움을 빼앗겨 버렸고 후유증으로 척추후만증(척추 장애, 곱추)을 평생 안고 살아가게 되었는데요. 그로부터 12년후 어렵게 다시 무대에 섰고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그대로 담아낸 연주로 '모차르트의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받습니다.



재기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유태인이었는 그녀는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피난중에도 각종 합병증과 뇌졸중으로 여러번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 전쟁이 끝날때가지 숨어 지냈습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그녀는 52세(1947년)가 되어서야 정식으로 첫 음반 녹음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유럽 전역에서 각광받기 시작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는데요. 러시아피아니스트의 거장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불멸의 지휘자 카라얀과 하스킬의 협연 공연을 보고 이렇게 얘기하였습니다.



"그녀의 몸은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카라얀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건반으로 손을 옮기자 곧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내가 평생동안 들은 연주중 단연 최고의 모차르트 연주 전문가였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력해 오케스트라가 다시 울려퍼질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풍부하면서도 자연스런 음이 오케스트라로 전달되어 지휘자마저 마술에 걸려 있었다."



"그녀 덕분에 그들 모두는 음악전 진실을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콘서트가 되었다"라고 말했는데요. 카라얀을 보기위해 찾은 공연장에서 누군지도 몰랐던 하스킬로부터 생애 최고의 공연을 선사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클라라 하스킬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있는데요. 전설적 희극배우인 찰리 채플린은 그녀에 대해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3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나는 두뇌의 소유자,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녀는 음악계의 거장이나 예술·문화계의 천재가 인정하는 피아노의 천재였습니다.


<아루튀르 그뤼미오(왼쪽)과 클라라 하스킬(오른쪽)>


천재의 연주에 사람들이 열광하자 그녀는 1953년부터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르투르 그뤼미오(Arthur Grumiaux, 1921~1986, 벨기에 출생)와 합동 공연을 시작하였는데요. 1960년 공연을 위해 도착한 벨기에 브뤼셀역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나는 항상 벼랑 모서리에 서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올 차이로 한번도 벼랑속으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지요. 그래요 그건 신의 도우심이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천재라고 하면 편협하고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클라라 하스킬은 일찍부터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 활동하였지만 항상 공손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음악적 천재성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격까지 갖춘 그녀는 '피아노의 성모(聖母)'라 불리운 진정한 천재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