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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대부분 눈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만큼 감각기관중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요. 갑작스런 시각장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게 되자 그 사회가 자신을 주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강영우(1944년 1월 16일~2012년 2월 23일. 경기도 양평 출생) 입니다. 14살 때 학교에서 축구공에 그만 눈을 맞아 시력을 잃어버렸지만 당시로써는 장애인이 상상하기 힘든 대학교에 진학, 미국 대학교수를 역임하고 마침내 미국 백악관에 입성한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어린 강영우는 가난한 집안의 희망이었는데요.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세에는 축구공에 눈을 맞아 각막 박리를 앓다가 당시 뒤쳐진 국내 의료 기술로 인해 시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갑작스럽게 아들이 시각장애인이 되자 그 충격으로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고 몇 년후에는 누나까지 하늘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은 두 명의 동생중 한 명은 친척집에 맡겨졌고 다른 한 명은 고아원에 맡겨지면서 모든 형제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강영우는 한국 서울맹학교에 다니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합니다. 당시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환경이 더 열악했기에 주변사람들 역시 "맹인은 비참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극렬하게 만류하였습니다.



하지만 숙명여대 1학년생으로 걸스카우트 자원봉사를 나온 석은옥 여사를 만나면서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습니다. 강영우는 대학 진학을 위해 별도의 대학생 개인 과외까지 받았는데요. 당시 과외 선생님이 늦은밤 술에 취해 찾아와 잠이 들면서 담배불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다행히 과외 선생님과 강영우는 피신을 하였지만 그가 입시 공부를 했던 맹인 전용 책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맙니다. 강영우는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지만 석은옥 여사가 그의 곁을 지켜주면서 다시 희망을 이어가게 됩니다.



1967년 강영우는 연세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접수하였지만 창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강영우는 대학 총장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지금까지 입시를 어떻게 왜 준비했는지 입학을 해야하는 이유를 간절히 설명하였고 총장은 접수를 허락합니다.



그는 서면 시험이 아닌 구술 시험을 보았고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합격하면서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항상 그에게 힘이 되어준 석은옥 여사와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72년 2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해 국제 로터리 재단으로부터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피츠버그 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당시만해도 장애는 지원대상이 아닌 해외 유학의 결격 사유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영우가 초청으로 해외 유학생이 되면서 그 조항이 폐지 되었습니다.




유학길에 오른 강영우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는 장애인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규 해외 유학생이자 정식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이 그를 봐라봐 주지 않았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고국에 돌아가 대학 강단에 서고 싶었지만 시각장애인 교수를 받아들이려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8개월 동안 무직자로 생활하다 미국 인디애나 주정부 교육부에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 그를 장애인위원회 정책 차관보로 임명하면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 이민사에서 한국인이 임명된 최고위 공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요.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은 대략 450만명 입니다. 그중에서 약 2500명만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으며, 다시 그 중에서 500명은 상원 인준을 통과해야 이름 앞에 'Honorable' 이라는 별도의 칭호를 부여 받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시각장애인으로 미국땅을 밟아 이민자로 정착한지 대략 25년만에 자신의 이름앞에 'Honorable'이라는 명예 호칭이 붙는 미국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자 세상이 그를 주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강영우 박사는 정책차관보로 6년동안 일하면서 미국의 5천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는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두 눈을 잃었지만 한 평생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게 됐다"고 밝히기도 하였는데요.



아내인 석은옥 여사는 "그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그의 성공을 나의 성공같이 느꼈다"면서 아낌없는 헌신과 내조를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말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2012년 2월 23일 췌장암으로 별세하였습니다.




강영우 박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1994년 MBC 특집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로도 만들어졌는데요. 강영우 역은 배우 안재욱, 아내 석은옥 역은 배우 김혜수가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에게는 폴 강(강진석. 안과 전문의), 크리스토퍼 강(강진영.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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