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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음악, 그림등 문화 예술분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 세계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술이 단순히 공간을 꾸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주장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의 정식 풀네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크리스피니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rispin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보통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년 10월 25일~1973년 4월 8일. 스페인 출생) 또는 더 짧게 '피카소'로 알려진 화가입니다. 입체파 표현주의 화가의 대가이며 천재 화가의 대명사 이기도 한데요.


<어린 시절의 피카소>


1937년, 내전에 휩싸인 조국 스페인의 한 마을 게르니카(Guernica)에서 약 4시간 동안 50톤의 폭탄이 투하되며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되는 만행이 벌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대략 1,600명이 사망하고 마을 전체 가옥의 80% 이상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게르니카(Guernica, 1937년作)>


무차별 폭격으로 선량한 주민들이 학살된 비참한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바로 화폭에 이것을 옮겼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게르니카(Guernica, 1937년作)>입니다. 폭격의 이유가 독일 나치(Nazi)의 무기 실험으로 알려지며 더욱 충격을 준 민간인 대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에게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수년전에 이미 의뢰한 작품이었습니다. 피카소는 게르니카의 참상에 영감을 받아 이유없이 죽어야 했던 민간인들과 폭격의 공포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중년의 피카소>


게르니카 참극은 후에 실제 사망자는 약 200~300명이며 폭격의 이유 역시 퇴로 차단을 목표로 한 교량파괴였으나 1차 폭격으로 일어난 먼지구름 때문에 목표식별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폭탄을 투하했던 것이 민간인 가옥의 파괴 원인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게르니카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을 당시, 한 독일군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린 사람인가?"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이에 대해 "내가 그렸냐구? 아니, 바로 당신들이 그렸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1951년 作)>


그는 "예술은 단순히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적들을 막을수 있는 강력하고 공격적인 무기입니다."라며 현실 참여 발언을 하기도 하였는데요. 1951년 6.25 한국전쟁중에 벌어진 신천 양민 학살을 모티브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1951년 作)>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피카소의 일화 몇가지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피카소가 해변가에 놀러갔는데 어린 아이가 펜과 종이를 들고 와서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피카소는 아이 부모가 자신을 알아보고 시킨 것이라는 걸 눈치챘는데요.


<우는 여인(1937년 作)>


아이를 통한 재산 증식 꼼수를 간파한 피카소는 아이가 가져온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아이의 등에 그림을 그려 부모에게 돌려보냈습니다. 피카소는 돌아가는 아이를 보며 "저 애 부모는 등에 그린 그림 절대 못지우겠지"라며 말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피카소가 파리의 카페에 있었습니다. 어느 여성이 찾아와서 그림값은 충분히 지불할테니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피카소는 단 몇 분 만에 여인의 그림을 그렸고 비용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는 "50만 프랑(한화 약 8천만원) 입니다" 라고 말했고 여인은 "아니 5분도 안 걸려서 그린 그림 인데요??"라고 놀라면서 물었습니다. 피카소는 "아니죠. 제가 5분도 안되는 시간에 이렇게 그림을 그려내는 실력을 얻기까지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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