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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대표 골키퍼로 활약했던 전 축구선수 김병지가 교통사고로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공개하였습니다. 다리에 마비가 왔는데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김병지는 무엇보다 "킥이 되어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데...ㅠㅠ" 라며 현재 운영중인 축구클럽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김병지는 2016년 7월, 24년간의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하였는데요. 당시 SNS를 통해 은퇴를 알리게 되면서 24년 이라는 시간을 대한민국 대표 골키퍼로 활약한 선수가 제대로 된 은퇴식도 없이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 것에 대해 많은 팬들이 허탈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9월 18일 울산 문수 축구 경기장에서 정식 은퇴식이 열렸습니다.



김병지는 1992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 무려 24시즌을 K리그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활약하면서 다양한 개인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통산 706경기 출장, 최다 연속(153경기) 무교체 경기 (2004년 4월 3일 ~ 2007년 10월 14일), 최고령 출장(45세 5개월 15일), 최다 무실점 경기(229경기), 12회 연속 올스타 출전(올스타전은 16회) 등 꾸준함과 실력이 없인 불가능한 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1970년 4월 8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 밀양초등학교와 밀양중학교를 거쳐 마산공고로 진학하지만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 전학을 하게 됩니다. 



이후 골키퍼로 꾸준히 활약을 했지만 고교 졸업 당시 구단 지명을 받지 못하여 창원 기계 공단의 금성산전에서 2년간 용접공으로 일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때가 선수 생활 지속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을만큼 중요한 시기였을것 같은데요. 이 시기에 꿈을 접지 않고 1990년 상무에 입단, 군복무후 1992년 울산 현대 선수로 프로무대에 데뷔합니다.



김병지는 축구팬이 흔히 아는 전형적인 골키퍼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K리그 골키퍼 최초로 공격에 가담해 헤딩슛을 성공하는등 수비뿐 아니라 공격적인 면도 많이 보여주었으며(물론 이러한 플레이는 후에 뜨거운 찬반양론과 그의 국가 대표 선수 생활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꽁지머리나 염색 머리등 파격적이고 개성넘치는 모습으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를 완성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공격적이며 적극적인 플레이가 때론 큰 독이 되기도 하였는데요. 결정적으로 2001년 1월 칼스버그컵 파라과이 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 가다 상대편 선수에게 공을 뺏기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 후반에 교체되고 맙니다. 



당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거스 히딩크 감독과 당혹스러워 하며 고개를 떨구는 핌 베어백의 모습이 영상에 그대로 잡히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뛰지 못하다가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생애 2번째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대한민국의 4강 진출과 이운재 골키퍼의 플레이를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은퇴후 2016-17 시즌부터는 SPOTV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독특한 해설이 좋다는 반응과 공감하기 힘들다는 평이 엇갈리기도 하였습니다.


2015년에는 아들이 학교 폭력 사건 논란에 휩싸이면서 큰 홍역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김병지 선수의 은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당시 상대 아이 학부모가 김병지 아들을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하면서 논란이 일었는데요. 2017년 10월 김병지는 당시 피해자의 주장은 거짓이며 이에 대한 충분한 증거와 함께 소송이 진행중이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가족관계는 부인과, 아들 셋(김태백, 김산, 김태산)이 있는데요. 아들 모두 축구를 좋아하다고 합니다. 선수로서 아버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김병지. 허리 디스크 수술이 잘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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